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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실습 동의서를 보며 스와로브스키가 생각나다

사회선생 2017. 12. 22. 09:56

정시 상담 기간이다. 우리 반 학생들의 수능 점수를 보면서 얘는 어디에 갈 수 있을까 찾아보고 있는데 직업반 학생 한 명이 왔다. 직업학교에서 위탁교육을 받으며 제과제빵 자격증을 취득한 학생인데 어느 식당에서 현장 실습을 하게 되었다고 학교장 직인을 받으러 온 것이다. 대학 입학이 아닌 취업 전선을 선택한, 길이 다른 학생이다.  

직업반 학생들은 지금 한창 현장 실습을 나가는 시기라고 한다. 잠깐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식 직원은 아니고, 시간제 아르바이트보다는 대우가 괜찮은, 일종의 인턴 사원 같은 것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았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만 교사로 일을 했기 때문에 고졸 취업자의 세계를 잘 모른다. 

그냥 모르는 입장에서 이야기해 보자면, 현장 실습이 전공 관련 실무 능력을 높이는 것이어야 할 것 같은데, 제과 제빵 자격증 딴 학생이 한식당에서 서빙하고, 한식 조리 기능사 자격증 딴 학생이 멕시칸 식당의 주방에서 일을 한다. 그래도 식당이라 관련이 있는 일이라고 여기나보다. 당연히 학생들은 거기라도 가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듯 했다. 최저 시급보다는 많이 받기 때문이다. 인턴 사원이라면 일종의 수습 기간이 끝난 후에 정식 직원으로의 채용이 보장되면 좋은데 또 그건 아닌가보다. 성실하게 일하되, 부당한 일을 당하면 어른들과 상의하고 도움을 청하라고 당부하며 보내면서 며칠 전에 들은 친한 선배의 조카 이야기가 생각났다.

홍대 미대 4학년인 조카 P는 아주 우연한 기회에 스와로브스키에서 인턴 사원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지원을 했단다. 오스트리아의 인스부르크에 있는 스와로브스키 본사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는데, 회사에서는 인턴으로 얼마나 일하고 싶은지 먼저 기간을 정하라고 했고, 가장 짧은 3개월을 요구하니 그렇게 해 주었단다. 직속 상관으로 마스터 한 명이 P를 맡아 일을 함게 했는데, 그 마스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P는 한국의 문화대로 퇴근 시간 이후에도 좀 남아서 일을 했단다. 그냥 일이 재미있어서 종종 회사에 남아서 이리저리 구경도 하고 말이 일이지 논 거나 다름없었단다. 그런데 어느날 본사에서 장문의 이메일이 왔단다. 일 너무 열심히 하지 말라고. 오랫동안 건강하게 일 하려면 그렇게 일 하면 안 된다고. 결론은 퇴근 시간 이후에 일하지 말란 말이었단다. 문화 충격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인턴이 끝날 즈음, 정식 사원으로 일하고 싶으면 기회를 주겠다고 하기에 아직 대학 졸업을 못했다고 했더니 꼭 학위를 필요로 하는 건 아니니 그 역시 네가 원하는 대로 하라고 하더란다. 네가 정식 직원으로 일 할 생각이 있다면 마치고 와도 뽑아주고, 지금이라도 당장 뽑아주겠다고... 추후 대학원 진학을 할 경우에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제도도 있다는 설명과 함께... 모르긴해도 인턴 사원으로 일 하는게 마음에 들었나보다. 그런데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그렇게 배려해 주는 직장이 대한민국에 몇 개나 될까? 우리네 직장은 대부분 가지고 있는 모든 시간과 능력을 밖에서 직장만을 위해서 쏟아붓길 바란다.  

가족과 떨어져 오스트리아의 인스부르크에서 창밖에 뛰노는 양들을 보며 즐겁게 일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현장 실습 동의서에 싸인을 해 주면서 자꾸 생각났다. 우리네 학생들이 고등학교만 졸업하고서도 이렇게 인간적으로 대우해 주는 좋은 회사에 들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네 회사는 언제쯤 '즐겁게' 일을 할 수 있게 해 줄까? 직장이 전쟁터 같은 곳이 아니라 정말 즐거운 곳이 될 수는 없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