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적당히 생기고 적당히 공부해서 다행이야

사회선생 2017. 11. 7. 08:40

어느 직업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교사도 학교 생활을 하다 보면 짜증날 때가 많다. 교육부때문에, 교육청때문에, 학교때문에, 학생때문에, 학부모때문에...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티는(?) 이유는 교사라는 직업의 본질때문이다. 부수적인 일들이 많긴 하지만, 때로는 주객이 전도되는 것 같은 일들도 많지만 그래도 교사의 일은 배우고 가르치는 일이며, 그것은 참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나이들수록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하게되었다. 특히 동물과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더더욱 교사하길 잘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의대에 갈 만큼 공부를 잘 하진 않아서 동물실험이나 사람 놓고 목숨 다투거나 돈 생각해야 하는 어렵고 불편한 일을 하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고, 예쁘지 않아서 쇼핑호스트가 되어 천연밍크와 라쿤, 리얼 퍼를 멋지게 걸치고 판매하는 일을 하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다. 또 기업에 들어가서 인간의 욕망을 부추기며 물건 팔아 이윤 창출해야 하는 데에 매몰되지 않아서 다행이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내 기질과 성격상 조직에 들어가봤자 순응력 떨어져서 이리저리 싸우고 치이다가 때려 치우거나 그 전에 짤렸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 아, 얼마나 다행인가. 그래도 학교는 사기업이 아니라 그럴 일은 거의 없으니...  

물론 내가 못 한다고, 싫어한다고 해서 의미없는 일이라는 뜻은 아니다. 세상에 의미없는 일이 어디 있으랴만은 나와는 안 맞는 일은 있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어차피 저 포도는 시어서 먹지도 못할거야' 일지도 모른다. 나를 정당화시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요즈음 세상 돌아가는 걸 보면, 뛰어나지 않아서 다행이고, 예쁘지 않아서 다행이고, 조직 순응력이 별로 좋지 않아 처음부터 기업에 들어갈 마음은 애시당초 가진 적이 없어서 다행이다. 생명의 가치에 대해 알게 되어서 다행이고, 그래도 의미있는 일을 하며 살고 있어서 다행이다. 어디에선가 누군가는 여전히 동물실험을 하고, 천연털옷을 만들어 팔고, 나 역시 의식조차 못한 채 그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만든 제품을 선택할지 말지 결정할 수 있지 않은가? 정말 다행이다.먹고 살기 위해 그 일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면서 계속 해야 한다면? 이건 마치 학생들을 정말 싫어하는데 가르쳐야 하는 것과 같으니 얼마나 괴로울까.  

학교 생활이 힘들때마다 생각하려 한다. 그래도 TV 앞에서 '여러분, 이 밍크는 차원이 달라요. 천연 모피가 얼마나 좋은지 아시죠? 리얼 퍼는 인조랑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말하는 것보다는 적게 벌어도, 유명해지지 않아도, 아무 것도 없어도 지금의 삶이 훨씬 낫다고. 힘든 일쯤 이겨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