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병먹금

사회선생 2017. 10. 30. 13:40

촌스럽게 태생적으로 낯가림이 심해서 모임을 즐기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며칠 전 어느 작은 서점에서 책공장더불어의 대표님과의 모임이 있기에 결심(?)하고 가 보았다. 이래저래 너무 심란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동물문제에 관심 많은 사람들의 모임인지라 다들 '요즈음 개 때문에 난리다, 무슨 말을 해도 개와 함께 사는 사람을 완전히 범죄자 취급한다, 동물 보호 운동에 적신호가 켜졌다. 동물보호단체들도 위축된 거 같다. 당장 나도 개 데리고 산책할 때 위축된다.' 그런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사람들에게 개도 개 나름이고 대부분의 개들은 안전하다고 해도 무슨 좀비들처럼 달려들어 '네가 어떻게 아냐, 사람도 못 믿는데 개를 믿냐, 너희 개에게 물리면 네가 책임질거냐' 등등 논리에서 벗어난 인신 공격성 막말들이 올라와서 무슨 말을 하기 힘들다고 했다. 그러자 한 사람이 지금은 '병먹금'을 지켜야 할 어둠의 시기라고 해서 빵 터졌다. '병x에게 먹이 금지'라는 뜻이란다. 어먹금이라고도 한다나? 정말 젊은 사람들의 감각이란.


"악한 사람이 선한 사람을 욕하거든 선한 사람은 모두 대꾸하지 마라. 대꾸하지 않는 사람은 마음이 맑고 한가하고, 꾸짖는 자는 입이 뜨겁게 끓느니라. 마치 사람이 하늘에 침을 뱉으면 도로 자기 몸을 좇아 떨어지는 것과 같느니라." (惡人罵善人 善人摠不對 不對心淸閑 罵者口熱沸 正如人唾天 環從己身墜) 명심보감 계성편(戒性編)에 나오는 말이란다. 악한 사람에게 굳이 애써 가르치려고 하거나 알리려고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사람들을 비난하며 쾌감을 느끼는 악한 사람이라면 굳이 무엇을 알릴 필요가 있으랴. 감정만 상하지...  


어차피 이래도 저래도 물고 뜯기 위한 사람들 앞에서는 침묵하는 편이 낫단다. 개를 좋아해요 그러면 네 부모한테나 잘 하라고 비난하고, 동물권에 관심 많아요 그러면 사람도 먹고 살기 힘든데라며 비난하고, 외국 기아들 후원해요 그러면 한국애도 먹고 살기 힘든 애들 많은데라고 비난하고, 한국의 어린이 단체에 후원해요 그러면 엄한 곳에 돈 퍼주고 진짜 어려운 사람은 수수방관한다고 비난한다. 그냥 그런 사람과는 말을 섞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는거다. 네, 저는 동물에 후원할테니 당신은 진짜 어려운 사람에 후원하세요. 서로 가치가 다르니까요. 저는 아프리카 기아들 도울테니 당신은 한국의 어린이 도우세요. 사람마다 우선 순위가 다를 수 있으니까요... 라고 할 필요도 없단다. 왜냐하면 어차피 그들은 누군가를 도울 마음도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먹금. 모임에서 젊은 친구들에게 배운 신조어이다. 모임에서 하나 건져왔다. 그래, 말은 상대를 봐 가며 하자. 모든 문제에 침묵하자는 것이 아니라 의미없는 상대와 가치없는 곳에서는 말을 하지 말자는 것이다. 인터넷 시대 적응이 만만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