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의 은퇴를 보며
꽤 오래 전 일이다. 당시 야구해설가였던 하일성이 학교에서 학생들 대상으로 특강을 한 적이 있다. 강당에서 학생들과 함께 들었는데,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건 한창 주가가 높았던 이승엽 선수의 이야기였다. 악수를 하려고 손을 잡았는데 완전히 곰발바닥 같아서 깜짝 놀랐다는... 그냥 손만 잡아봐도 알 수 있는 그의 연습량에 숙연해질 정도였단다. 좋은 감각과 몸을 가지고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단언컨대 가장 연습을 많이 하는 선수라고 했다. 타고난 천재성을 홈런왕으로 빛나게 한 건 비범한 연습량이었나보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이승엽의 슬럼프 시기에 일본에서 함께 있었던 김성근 감독의 증언에 의하면 손에 피가 나도록 연습을 했다니, 장갑을 끼고 배트를 휘두르는데도, 피가 날 정도면 도대체 얼마나 어떻게 연습을 한단 말인지 상상이 안 된다. '국민타자'로 존경받을만한 인물이었음에 틀림없다.
그가 은퇴했다. 제2의 박철순을 꿈꾸며 투수로 야구 선수 생활을 시작했던 그가 타자로 전향한 후 수 많은 홈런으로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었고, 야구에 임하는 태도와 인간성에서조차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었던 그가, 야구밖에 모를 것 같은 순진한 청년같은 그가 이제 야구를 그만 두었다.
어떤 분야에서든지 최고의 기량을 가진 사람을 보내는 건 참 아쉬운 일이다. (박철순 이후 이렇게 감정 이입되는 선수는 또 처음이네. 공연히 내가 뭉클해진다.) 그는 비록 마운드를 떠나지만 그로 인해 영감을 얻은 많은 어린이와 청소년들과 후배 야구 선수들은 열심히 연습하며 꿈을 키워 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이승엽은 여전히 살아 숨쉴 것이다. 이 또한 얼마나 멋진 일인가? 야구선수로서 그의 삶은 훌륭했다고, 그리고 앞으로도 의미있게 이어져나갈 것이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얼마나 열정을 불태운 적이 있었는지? 프로패셔널이 되기 위하여 우리가 한 일은 무엇인지, 지금은 뭘 하고 있는지... 늘 타고난 지능과 환경 탓만 하면서 자신의 불성실함과 나태함을 정당화하며 사는 것은 아닌지. 학생들에게 말해줘야겠다. "최고가 되고자 하는 마음을 포기하든가, 최고가 되고 싶으면 열심히 노력하든가 둘 중 하나야. 놀면서 최고가 될 수는 없다. 이건 모순이거든.'
"선생님,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최고가 안 될 수도 있는데... 그러면 너무 억울하잖아요."
"맞아,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런데 어떡하지. 노력한다고 다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노력하지 않고 성공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네가 성공을 원한다면 노력할 수밖에 없는데... 안 될 가능성을 생각해서 그냥 현재를 즐기든지, 나중에 억울해지는 한이 있어도 끝까지 가 보든지... 그건 네 선택이야. 유감스럽게도 인생은 한 번 뿐이라..." (대충 학생들에게 이야기해 줄 시나리오는 짜 놨는데, 얘들이 '야야 성공해 봐야 뭐 하냐? 손바닥 까지게 노력하지 말고, 그냥 인생 대충 재밌게 살다 가자.' 이러면 어떡하지? 뭘 어떡해? 네 선택이라면 그것도 나쁘지 않은 인생일 수 있다고 이야기해 줄 수밖에! 마지막 뒤끝 하나 남기고. '그런데... 네가 진짜 재능이 있는데 노력 안 해서 대충 살다 가는거면 그것도 억울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