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자사고를 없애야 돼?
나는 서울의 강북 중에서도 변두리 동네의 아주 평범한 고등학교를 다녔다. 평준화 시대에 근거리 배정 원칙으로 내 의지와 무관하게 정해진 학교였다. 비교적 자유분방한, 그렇게 빡세게 공부시키지 않는 그런 고등학교였다. 하지만 공부 잘 하는 학생과 못 하는 학생들, 다양한 가정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뒤섞여 함께 공부했고, 서로 서로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지금 고등학교 동창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매우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살아간다. 요즈음 학생들이 선망하는 의사, 교수, 은행원, 대기업 직원, 기자도 있고, 식당 주인, 여행사 직원, 옷가게 사장, 가정 주부 등... 대학 친구들보다 직종의 스펙트럼이 훨씬 넓다.
그런데 내가 근무하는 고등학교는 여전히 강북의 변두리 동네의 아주 평범한 고등학교인데, 의대에 진학하는 학생이 몇 년에 한 명 있을까 말까 하다. SKY의 경영이나 경제학과? 내 기억으로는 없다. 우리 학생들이 의사 친구, 대기업 직원인 친구, 사무관인 친구, 은행원 친구, 방송국 PD나 신문사 기자 친구를 가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럴 가능성이 높은 학생들은 이미 자사고나 외고에 따로 모아놨기 때문이다. 모르긴해도 자사고나 외고의 학생들은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력을 갖춘 가정에서 성장한 아이들이고, 공부도 잘 해서 사회에서 선망하는 직종으로 진출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중 일부는 사회의 엘리트가 될 것이다. 그들의 친구 중에는 기초생활수급 가정의 친구도, 치킨집 배달 알바생 친구도, 밤마다 삐끼를 하는 친구도 없으리라... 그런 학생들이 우리 사회의 엘리트가 되는 것이 난 참 재미없다. 프랑스 혁명 당시 마리앙트와네트처럼 되지 않을까? "빵이 먹기 싫으면 비스켓을 구워 먹으면 될 거 아니야? 쟤들 왜 저렇게 시끄럽게 굴어?"
물론 어느 사회에서나 계층별로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공교육 기관인 고등학교에서 계층별로 사회적 네트워크를 형성시키는 기능을 한다면 이는 막아야 한다. 그 자체로서 비교육적이기 때문이다. 공교육의 목적은 학력만 신장시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공동체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우는 곳이다. 그들에게 학교는 삶의 현장이고 다양한 사회적 체험의 장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자사고와 외고는 그런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공부 못하고 가난하고 거친 아이들과는 섞이고 싶지 않을테니...) 일반고는 차단당한다. (키 큰 나무 옆에서 자극이라도 받아 같이 키 크고 싶은데...) "왜 자사고 외고를 폐지해야 돼?" 많은 사람들이 질문을 한다. 나의 경험담이 그에 대한 답변 중 하나가 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