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가정통신문에 묻히다

사회선생 2017. 3. 8. 08:38

3월 2일 개학식을 하고 새학년이 시작됐다. 담임의 가장 중요한 일은 가정통신문 배부와 수합이다. 딱 나흘 동안 학부모들에게 보낸 가정통신문을 살펴보면 대충 생각나는 것만 해도 다음과 같다.

 

'급식비 관련 가정통신문, 등록급 납부 안내, 교육비 신청 안내, 자동차 등하교 관련 안내, 우유급식 선호 조사, 우유급식 신청서, 방과 후 수업 참여 희망, 자율학습 참여 희망, 건강조사서, 응급환자관리동의서, 개인정보활용동의서, 식품알레르기 조사, 교육 급여 및 교육비 지원 안내...'  

 

참고로 학생에게만 나간 안내물은 이것보다 더 많다. 그런데 가정통신문은 배부하는 데에서 끝이 아니다. 대부분의 가정통신문은 그 밑에 학부모 싸인을 받아 다시 회수해야 한다. 학교에서 일종의 안전 장치로 학부모 동의서를 받아두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평상시에는 사실 별로 쓰일 일이 없지만 사고가 발생하면 이 동의서들은 매우 큰 효력을 발휘하나 보다. '강제가 아니었다, 학교는 알 수가 없었다. 학부모가 준 정보대로 우리는 지도했다.'  부모는 자율학습 안 시키겠다고 했는데 교사가 강제로 시켜서 밤에 집에 가다가 사고라도 나면? 아이가 쓰러져서 근처 병원에 데리고 갔는데 왜 그 병원에 데리고 갔냐고, 그 때문에 아이의 병이 더 커졌다고 학부모가 학교 상대로 소송이라도 하면? 우리 애가 콩 알레르기가 있는데 콩밥 먹고 응급 상황이 됐으니 학교에서 책임지라고 하면? 또 교육비 신청 시기를 놓쳐 해당자임에도 교육비 지원을 못 받게 됐다고 항의하면?

가정통신문의 홍수가 이해는 되는데 달갑지는 않다. 단지 업무가 많아져서는 아니다. 그냥 불신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때문이다. 체계가 잡혔다고 긍정적으로만 보이지 않는 기계적 학부모 동의서.  

 

이걸 나눠주는 건 일이 아닌데 걷는 건 매우 큰 일이 된다. 학생들이 집으로 가져 가지도 않을 뿐더러, 가져 가도 제대로 싸인 받아 다시 가져오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선생님, 잃어버렸어요. 선생님, 저희 엄마 요즘 집에 없어요. 선생님, 깜빡했어요. 선생님, 집에 두고 왔어요. 선생님, 저는 전학갈건데 내야 돼요? 선생님, 엄마가 안 써 줬어요.... " 

 

담임 업무가 한 두 가지가 아닌데, 가통 십여 가지를 도합 수백 가지를 빠짐없이 걷는다는 것은 사실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담임은 그 불가능을 해낸다. 편법으로... 가정통신문을 안 가져온 아이에게 오늘까지는 제출해야 하니 네가 싸인해서 내라고 하기 때문이다. 비교육적인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정적 편의를 위해서 자행하고 있는 담임은 자괴감이 든다. 

 

가정통신문같은건 요즘같은 정보화시대에 학생 통하지 말고 학부모와 직거래 하면 안 되는지? 정보부에서 부서 하나 만들어 확인받는 일까지 맡아서 해 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 너무 이상적인가?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담임 하기 싫은 백만 가지 이유 중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