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의 동물사랑실천협회가 그립다
2008년, 시장에서 병걸린 새끼 고양이를 구조한 적이 있다. 눈병에 걸린데다가 비쩍 말라서 앵앵거리는 고양이 새끼가 너무 불쌍해서, 그대로 두면 죽을 것이 너무 뻔해서, 앞 뒤 생각도 없이 그냥 일단 살려야겠다고 생각하고 박스를 하나 구해서 거기에 담아 동물 병원에 데리고 갔다. 눈병을 치료하면서 우리 집에서 사나흘 지냈나... 그런데 식구 중 한 명에게 그 때까지 몰랐던 - 고양이를 키워 본 적이 없으니 - 고양이 알레르기 증상이 심각하게 나타나기 시작했고, 더 이상 오래 같이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며칠 동안인데도 정이 들어서 좋은 사람에게 입양을 시켜보려 노력하였으나 흔하디 흔한 턱시도 길고양이는 아무리 새끼라도 인기가 없었다. 난감했다. 다시 길로 보낼 수는 없었다. 그 때 동물사랑실천협회에 전화를 해서 사정을 말하고 구조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들은 흔쾌히 와서 고양이를 자신들의 포천 보호소로 데리고 갔다. (운이 좋게도 그 고양이는 입양을 갔고, 지금 앤셜리라는 이름으로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고 있다. ) 그렇게 우리는 동물사랑실천협회와 인연을 맺게 됐고, 고양이를 보기 위해 물품들을 챙겨 포천 보호소에 종종 들렸으며, 고양이 밥값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그 때부터 정기적으로 후원을 하게 되었다. 그 때의 동물사랑실천협회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불쌍한 애들을 살리고 보자는 심정이었던 것 같다. 나와 마찬가지로...
그런 이유때문인지 동물사랑실천협회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후원자를 두고 있는 최대의 동물보호단체가 되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조직이 커지면 인력도 자원도 더 많아졌다는 뜻인데, 이상하게 구조를 하는 데에는 더 박해졌다. 새로 만들어진 홈페이지에 들어가봐도 심하게 학대를 받는 정도나 구조를 할까 말까, 웬만한 구조 요청은 할 수 없도록 원천 봉쇄를 해 놓았다. 인력과 자원에 한계가 있으니 일단 당신이 구조한 후 보호하고, 자신들은 입양 공고의 단체 메일 보내는 정도로만 도와주겠다고 명시돼 있다. 그에 대한 미안함이 별로 느껴지지도 않는다. (그걸 보면 공연히 내가 구조한답시고 데리고 와서 고생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두자고 생각하게 한다.) 과거에는 안락사를 시킬 수 있었지만 2011년 이후에는 안락사를 시키지 못하기 떄문에 구조를 많이 할 수 없다는 말로는 절대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조직이 커지고, 유명해지면서 구조 요청도 더 많아졌으리라. 그렇다면 그 구조 요청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에 대하여 많은 회원들과 함께 해결 방안을 찾아야지, 구조 요청이 많아 일일이 구조에 응할 수 없다고 선을 긋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 조직이 더 커지면 작고 중요한 일은 뒤로 제쳐둔 채, 크고 폼 나는 일만 하려고 할까? 물론 큰 조직이 큰 일을 해 주어야 하는 것은 맞다. 회원들을 동원하여 정치적 이슈를 만들어 내고, 척박한 우리나라의 환경에서 동물보호법 개정 운동도 해야 하고, 동물복지와 더 나아가 동물권 실현 운동도 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운동때문에 구조는 할 수 없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본말이 전도된 것 같은 느낌이다.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큰 동물보호단체들이 상호 간에 연대하는 것을 보기 힘들고 - 오히려 소규모의 동물보호 카페들은 단합이 잘 된다. 심지어 자원봉사자들을 중심으로 구조 활동이나 임시 보호 활동도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 점점 구조 활동에는 박하고, 후원금을 더 많이 모으는 데에만 관심을 쏟으며, 즉각적인 구조보다는 정치적인 구조에만 신경을 쓰는 것 같다. 동물보호단체들이 얻으려는 명예와 이익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죽어가는 생명을 하나라도 더 살리는 것 아닌가? 그 목적은 나중에, 더 커 진 후에, 보호소 지은 후에, 후원금이 더 많이 들어온 후에, 대중매체들이 모두 달려온 후에 하려는 것만은 아니기를.
'새끼 고양이가 불쌍해요, 갈 곳이 없어요, 도와주세요.'라는 말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달려와 주었던 동물사랑실천협회의 옛날이 그립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그런 동물보호단체가 하나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제발.
* 사회 문화 수업 시간에 관료제의 폐단으로 활용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시민단체와 관료제는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아닌가? 모든 조직은 커지면 관료제가 될 수밖에 없는지...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