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졸업 앨범 사진은 소중하니까

사회선생 2016. 5. 31. 08:28

졸업 앨범 사진을 찍는 계절이다. 요즈음 학생들이 얼마나 외모에 집착하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몇 년 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다. 문득 남학교 학생들은 졸업 앨범 찍을 때 어떤지 궁금해진다. 내가 근무할 때에는 그냥 엎드려서 자다가 얼굴에 난 자국도 그대로 두고 가서 무심하게 사진을 찍는 아이를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는데....아무튼 남학교에서는 졸업 앨범 사진 찍는다고 유난스러웠던 기억이 없다. 별로 신경 쓰는 학생들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여고에 와 보니 달랐다. 그리고 더 달라지고 있다. 그녀들은 왜 자신의 사진과 외모에 그리도 집착하는걸까? 여러가지 생각들이 오고간다.

요즈음 여학생들 사진 찍는 날의 교실 풍경은 미용실 수준이다. 아침부터 드라이기로 머리 구부리고, 화장품 가방을 통째로 가져와서 서로 화장해 주고... 구루프 말고 돌아다니고... 난리도 아니다. 어느 한 반만 그런 것도 아니고 이미 제어할 수 없는 문화 그 자체이기 때문에 학교에서도 사진 찍는 날은 의례 그러려니 한다.

수업 시간에 들어가 보면 평소와 다른 '찐한' 모습으로 앉아 있다. 아무리 봐도 화장을 했다고 해서 더 예뻐 보이지는 않는데, 그네들에게는 그게 예뻐 보이나보다. 어설픈 화장의 촌스러움이 묻어나서 난 별론데... 죽자고 화장한 아이들에게 그래 그것도 추억일테니 그냥 내버려 둔다.  

그런데 그건 약과다. 사진이 나오면 가장 날 나온 사진을 고르느라 하루 하고도 모자라 더 시간을 달라고 하고, 종이가 닳도록 보고 또 본다. 심지어 내게 물어온다. "선생님, 어느 사진이 제일 잘 나왔어요?" 난 아무리 봐도 다 거기서 거긴데 뭐가 그리 다르다는건지 원. 그래서 "이게 제일 나은거 같다" 이러면 "그래요? 다른 아이들에게도 물어봐야겠어요." 이런다. 자신이 원하는 답이 안 나온게다. 그냥 자신이 원하는 사진을 고르면 될 것을 그 마저도 주변인들에게 예쁘게 나왔다고 굳이 확인받아야 한다. 아, 얼마나 피곤할까? 

사진을 골랐다고 끝이 아니다. 사진을 고른 후에는 사진 아래 포토샵 주문 사항을 빼곡히 적는다. "턱 깎아주세요. 눈 크게 해 주세요. 이마 넓혀 주세요. 피부 톤 밝게 해 주세요. 코 높여주세요. 목 선 가늘게 해 주세요..." 주문 사항이 어찌나 많고 까다로운지 정말 가관이다. 읽다보면 웃음이 풋 터진다.

결국 내가 한 마디 했다. "야, 이렇게 보정하면 이게 너니? 뭘 이리 복잡하게 적니? 어차피 정체성 바꿀 거 그냥 간단히 적어. 송혜교 사진으로 대체해 주세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