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책임 전가형 화법

사회선생 2015. 12. 9. 11:00

 "혹시 명예퇴직을 하실거면 미리 말씀해 주세요. 티오를 미리 파악하고 확보하려구요." 정년을 앞둔 교사에게 이런 말을 했다면 어떤 의미로 들어야 할까? 학생이 말썽을 부려 힘들어하는 담임 교사에게 "담임이 너무 팍팍하게 굴어서 그런거 아니야? 좀 다정하게 대해 주지..." 모르긴해도 다정하게 대해 주는 담임에게는 이렇게 말하리라..."담임이 너무 물러터져서 그렇잖아. 그런 애는 확 눌러 잡아야지." 결혼을 하고 싶은데 못하고 있는 교사에게 "에이 너무 고르지 말고 적당히 사람 찾아서 가"  유산을 해서 힘들어하는 임산부에게 "그러게 자기 몸 관리 자기가 해야지. 그렇게 일을 하면 어떻게 해?"  가만히 들어보면 이런 말들은 대부분 책임 전가형이다. 

 어떤 부장이 자신이 좋아하는 A를 데리고 일을 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자기 의도와 다르게 - 교장 교감때문에 - B와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랬더니 B에게 이렇게 말한다. " 당신 감당할 수 있겠어? 나랑 편히 일할 수 있겠어? 나랑 친하지도 않잖아. 그리고 이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아?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만만하지 않아. 생각보다 많이 힘들거야." 옆에서 그걸 보고 있자니 정말 한 마디 해 주고 싶었다.  '야, 속 보인다. 차라리 솔직하게 말해' 그 부장은 전형적인 책임 전가형 화법을 구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B가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하며 스스로 물러나길 바라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자기가 리더십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을 필요도 없고, 자신이 원하는 A를 데리고 일을 할 수도 있고, 교장 교감에게 말하기도 좋고... 아무리 봐도 딱 그걸 노리고 이야기하는 게 보였다. 솔직하게 말했어야 한다. "선생님, 아무래도 내 입장에서는 A를 데리고 일을 해야겠어. 미안하지만 선생님이 이해해 줘. 교장 교감선생님께는 내가 그렇게 말씀드릴게." 그리고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한다. 자기는 목적한 바를 이루고 싶은데 책임은 지기 싫으니까, '네가 싫어서 나간거야. 그러니까 내 책임은 아니다. 네 무능력이지."로 만들려는 그 부장의 무책임하고 비겁한 모습이 민망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보였다. 사실 '감당하기 힘들 만큼'의 업무량이 결정된 것도 아니었다. 교장 교감과 상의도 없이 자기가 업무를 만들어서 얹으며 하는 말이었다. B를 밀어내고 싶은 마음에...물론 그는 인정하지 않고, 자신은 B를 위해 사실을 알려주려 했을 뿐이라고 하리라. '사실'은 '가치'에 의해 선택된 것일뿐이건만... 심지어 사실인지조차도 의심스러운...   

 속으로 생각했다. '솔직하지 않은 책임 전가형 간접 화법도 맘에 안 들지만, 여기가 무슨 놀이 집단도 아니고, 어떻게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만 데리고 일을 하지?' 이 좁은 교무실에서도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캐릭터를 문득 문득 예기치 않은 곳에서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