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하면 맞게 해 주지
학교로 어느 학부모가 전화로 나를 찾는 전화를 여러 차례 했다. 서 너번 끝에 받았는데 경기도에 있는 어떤 학교의 학부모이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자신의 아이가 사회문화 중간고사를 봤는데 그 학교의 출제 선생님과 논쟁이 붙어서 저자인 나의 의견을 듣고 싶어 전화를 했단다. 가끔 학교로 전화를 걸어서 내가 쓴 교과서나 교재의 내용에 대해 질문을 하는 교사들은 드물게 있지만 학부모에게 이런 전화를 받는 건 처음이었다. 내용인즉, 자신의 아이가 중간고사에서 주관식 문제의 정답인 '근대화론'을 '근대화이론'이라고 썼는데 선생님이 틀리게 채점했다며, 그게 정말 틀린거냐고 내게 물어왔다. 그러면서 자신의 딸은 이 문제에 등급이 달라지기 때문에 정말 속상해한다고 했다. 물론 그 말은 자신도 그 이상으로 화가 난다는 뜻이리라...
속으로 생각했다. '아 진짜 그 선생 누군지 참... 왜 맞는 걸 틀리다고 고집을 부려서 이런 사단을 만들어...MODERNIZATION THEORY 를 근대화론이라고 할 수도 있고, 근대화 이론이라고 할 수도 있는거지.' 하지만 가뜩이나 흥분해 있는 그 학부모에게 기름을 부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 학부모의 말을 다 들어준 후에 말했다. "네, 근대화론이라고 더 많이 사용하긴 하지만 외국의 이론을 번역한 말이라 근대화론을 근대화이론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요... 그 사회문화 선생님에게 다른 사람이 다 맞는다고 하는데 선생님은 왜 그러냐는 식으로 접근하지 마시구요, 학생이 선생님에게 근대화 이론이라고 되어 있는 백과사전이나 책을 가지고 가서 저는 이런 책들을 보고 같은 말로 알았다고 맞게 해 달라고 완곡하게 부탁 드려 보십시오."
대충 그림이 잡힌다. 학생은 조르고 교사는 우기고... 교사는 여기에서 우기면 안 된다. 자신이 근대화이론을 틀리게 채점했다면 근대화론과 근대화이론이 왜 다른 말인지 설명해서 납득을 시키면 된다. 그 과정에서 실패하면 우기기가 되고, 우기기 시작하면 학생은 납득할 수가 없고, 교사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다.
저녁에 가까운 사회과 교사들 모임이 있어서 그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한 교사가 말했다. "모르니까 그러는거야. 모르는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지. 모른다는 사실을 알면 찾아보려고라도 할텐데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니 자신이 옳다고 믿고 우기는거야. 진짜 답답하다."
어떻게 해결되었을지 궁금하다. 솔직히 교사가 끝까지 우겼을 가능성이 높지만... 처어칠이 그랬던가? 무식한 사람은 어떤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