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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서 보낼테니 질병조퇴 처리해 주세요.

사회선생 2014. 9. 5. 10:31

 드디어 예상했던 일이 터졌다. 수업이 끝나기 전에 미술학원에 보낼 수 없다고 공포하자 학생의 어머니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7시 10분, 출근길에 전화를 받았다. 학교에 왔다고 한다. 가는 길이니 기다리시라고 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무슨 문제로 저러는지 알기 때문이다.

"무슨 일때문에 오셨는지 대충 짐작이 가는데요, 미술 학원을 이유로 질병 조퇴 처리는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말하자, 처음에는 사정하다가 중간에는 훈계하다가 마지막에는 협박(?)한다. "선생님, 제발 사정 좀 봐 주세요. 우리 아이 대학에 가야 해요... 선생님이 아이를 배려하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아이의 미래가 중요하지 원칙이 중요한가요? 진단서 떼어 올테니 원칙대로만 처리해 주시면 되잖아요? 아이를 생각하셔야죠... 저희 애 아빠가 가만있지 않을거에요. 조용히 있지 않을텐데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교장선생님 만나면 되나요?"

 마음같아서는 교장실로 안내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생각이 그렇다면 편할대로 하십시오. 교장선생님이 질병 조퇴처리해 주라고 명을 내리시면 결국 그렇게 할 수밖에 없겠지요. 하지만 제 양심에는 다른 아이는 무단 조퇴 처리하고, 그 아이만 질병 조퇴 처리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교실로 올라갔다. 가지고 온 음료수도 가서 학생들 나누어 주라고 돌려보냈다. 아침부터 심하게 불쾌했다.

 그런데 해당 학생이 내려왔다. "선생님 죄송해요. 저희 엄마가 왔었죠? 저 그냥 수업 다 받고 갈게요. 제가 생각해도 저만 질병조퇴 처리해 달라고 한 건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정말 죄송해요." 이러면서 눈물을 뚝뚝... 기특했다. "그래, 알았어. 너도 마음이 불안하고 힘들어서 생각없이 그렇게 말했던거 이해해. 선생님을 이해해 줘서 고맙구나. 친구들과 잘 지내기 위해서라도 너만 그렇게 가는 것은 좋지 않아. 이제 그 일은 마음 쓰지 말고 올라가서 공부하거라."

 교사가 힘든 이유는 분명히 말하지만, 학생때문이 아니다. 선택 과목 바꾸겠다면서 수능 원서 다시 써 달라고 몇 번씩이나 내려오는 학생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요즈음 수시 면담으로, 수능 원서 접수로 - 이건 평가원 일인데 왜 교사들이 해야 하는지 문득 회의가 든다. 개인이 직접 인터넷으로 수능 접수하게 하면 되지 않는가? 담임 교사들이 수능 응시료도 걷고, 몇 번이나 확인서 받아서 제대로 수능 원서를 썼는지 확인하고.. 문득 평가원 하청업체 직원이 된 기분이다. - 고3 담임은 정말 바쁜 때이다. 그런데 학부모까지 와서 열기를 더해 주고 가니... 그래도 다행인건 학생은 학생다웠다는 점. 그것으로 위안을 삼으며 또 교실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