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학원 가야 되는데요.
올해 우리반에는 미대 진학을 목표로 한 학생들이 많다. 학생들 관리(?)가 쉽지 않다. 근본적으로 예체능 입시 제도의 문제이다. 사설 학원에 의존해 실기 연습을 해야 대학 진학이 가능한 예체능 입시 제도는 학교 교육을 무력하게 만든다. 대학에서 학교 미술과 학교 체육만 가지고 선발해야지, 왜 사설 학원에서 연마된 기술을 가지고 선발하는지, 이는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실질적으로 돈 없는 아이들은 예체능 대학 접근조차 불가능하다. 이처럼 학교 교육이 아닌 학원이나 개인 레슨에 의해 학습된 실기 능력을 가지고 대학 입시가 결정되는 것은 비정상적인 것이다. 그렇다보니 그들의 학교 생활은 엉망이다. 조금 과장해서 그들에게는 학교 교육이 별로 의미가 없다. 가뜩이나 개성적이고 자유로운 영혼들이라 엄격한 교칙에 적응해서 학교 생활하기도 힘든데, 학교 교육의 필요성마저 없으니 성실하게 학교 생활을 하겠는가?
수시모집을 앞두고 우리반의 미술대학 희망자 세 명이 교무실로 내려왔다. (두 명은 같은 학원, 한 명은 다른 학원에 다닌다. 미대 지원자는 15명쯤 되지만, 이들이 대표로 내려온 듯 했다.) 모두 수시에 응시해 보겠다는 학생들이다. 그들의 실기 능력이 어느 수준인지 알 수 없다. 물론 내신 성적은 좋을 리 없다. 그런데 미술 학원에서는 성적만 오르면 갈 수 있다고, 너희 실기는 괜찮다고 희망적으로 이야기하나보다. 그러면서 저녁에만 하는 실기 연습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오후 1시부터 하는 수시 대비 학원 특강도 들으라고 했단다. 학생들은 불안한 마음에 학교를 조퇴하고 앞으로 금요일마다 미술학원에 가서 특강을 듣겠단다.
담임으로서 단호하게 말했다. '정규 수업이 끝나지 않았는데, 학원에 보내 줄 수는 없다. 만일 그냥 간다면 무단 조퇴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 그러자 한 녀석이 자신은 진단서 떼어 올테니 그냥 질병 조퇴로 처리해 달란다. 기가 막혔다. 담임과 야합(?)을 하자는 것인지... 역시 단호하게 말했다. '거짓으로 가져오는 진단서인줄 알고 묵인해 줄 수 없다. 너처럼 진단서를 쉽게 떼 올 수 있는 학생은 학원 특강 들으러 갈 수 있고, 그렇지 못한 학생은 가고 싶어도 못 간다면 이는 매우 불공평하다. 그런 편법을 수용할 수 없다.'
학생들은 담임이 그깟 병조퇴 하나 처리 못 해주나 매우 섭섭해하는 얼굴로 교무실을 나갔고, 종례 시간에도 그들의 얼굴을 보니 입이 한 주먹은 나와 있었다. 그들의 잘못도, 나의 잘못도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둘 다 피곤하게 학교 생활을 해야 한다. 그들도 나도 억울하다. 왜 예체능 학생들을 학원으로 모는 것이 정상이 되어야 하는가? 사실 걱정된다. 교실에서 말없이 사라질까봐...'알아서 무단으로 처리하든지 말든지.' 그건 곧 담임 말도 우습다는 뜻 아닌가? 아, 진짜 담임하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