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그냥 B 받을테니 담임 시키지 마시죠.

사회선생 2014. 7. 9. 23:43

 교원평가제에 찬성했었다. 적어도 담임과 비담임, 업무의 양과 완성도, 수업 능력(학생평가) 등은 비교적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하지 않을까 '순진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학교의 현실은 달랐다. 이름도 길고 어려운 '교원 성과 상여금 차등 지급 자가 채점표'의 항목들을 살펴보니 매우 세심하게 신경써서 정교하게 만든 것 같지만, 참으로 교묘하게 정치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00점 만점에 담임과 비담임의 점수 차이는 3점이다. 평가 항목이 수 십 가지가 있는데, 그 중 가장 큰 점수 차이가 나는 것은 관리자 평가 점수 10점, 연수 이수 시간 7점이다. (근태나 업무, 수업 관련 항목들은 평가 항목들은 대부분 2점 혹은 3점 만점이다. 따라서 크면 2점, 작으면 1점 차이다.) 연수, 그것도 클릭질만 하면 되는 사이버 연수를 60시간 하는 것이 담임 업무하는 것보다 '교사로서의 전문성 신장에 기여했다'고 훨씬 높은 평가를 받는다. (이것은 매우 정치적인 항목이다. 연장자에게 점수를 줄 수 있는 방법이면서, 동시에 교사 연수 시간이 학교 평가의 주요 항목 중 하나이니 학교에서는 학교 평가 점수를 잘 받으려고 교사 연수 시수에 가장 큰 변별(?)을 둔 것이다.) 관리자 평가 점수 10점은 또 어떤가? 너 담임 열심히 해 봐야 소용없어. 그냥 나에게 잘 보이는게 더 좋을걸? (누누히 말하지만 담임과 비담임은 업무의 경중과 부담에 있어서 하늘과 땅 차이다.)

 그 외에 정치적 항목이라고 판단되는 것들을 나열해보겠다. 포상(장관상 등 근무 연차에 따라 주는 상), 부전공 자격증 취득, 학교 표창 기여도, 초과근무 - 참고로 많이 할수록 좋다 -, 학교 행사 참여도, 방과후 학교 참여도, 연구 시범 등 각종 공모 사업 참여도.    

  결론이 나온다. 학교 사업에 적극 참여하며, 사이버 연수 열심히 하고, 관리자에게 잘 보이면 된다. 그럼 S 등급의 교사가 된다. 담임 업무 열심히 했던 교사들에게 '너는 비담임만도 못한 B급 교사야. 최하위 그룹이니 분발해서 더 열심히 일하렴.' 통보를 하는 것이 과연 공정한 교원 평가인지... 하긴 처음부터 '공정한' 교원 평가는 불가능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신학년 제언서에 써야할까보다. '담임하면서 B 받느니 비담임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B를 받겠사옵니다. 무능력한 B급 교사에게 담임을 맡기지 마시옵소서.' 

 

p.s. 담임하면서 B를 받은 사람이 네 명이란다. 고3 담임 두 명, 고2 담임 두 명. (우리 학교는 기본적인 담임 업무가 다른 학교에 비해 매우 많다.) 간부회의인지 뭔지에서 담임에게 B를 주는건 너무하지 않냐고 누군가 말하자 교장이 말했단다. 내 직권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