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생명

실험실 동물 잔혹사... 거세지는 비난 여론(서울경제)

사회선생 2011. 4. 25. 13:03

실험실 동물 잔혹사…거세지는 비난여론

대체실험 세계적 추세, 동물실험 사라지는 날 올까?

전세화 기자 candy@hk.co.kr
도움말=한국동물보호연합(www.kaap.or.kr)이원복 대표

 

 

감정과 사고가 가능한 살아있는 생명체에게 극단의 고통을 주는 동물실험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동물실험을 한 화장품이나 담배, 알코올의 생산과 판매, 유통을 법으로 금지하는 나라들이 늘고 있다. 또 동물 대신 컴퓨터시뮬레이션이나 생체세포 실험이 동물실험을 대체하는 추세다. 국내에선 구제역 이후 동물실험에 거부하는 정서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동물실험 반대론이 점차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지 동물실험의 실태와 반대이유를 통해 알아보고, 대체 실험법도 소개한다.

실험실 동물들의 절규

최근 영국 '생체해부 금지를 위한 협회'(BUAV)가 생체실험 전문업체 '위컴'의 실험실에 잠입해 촬영한 잔혹한 동물실험 현장의 모습이 공개돼 비난이 쏟아졌다.

공개된 영상을 보면 토끼들이 플라스틱 상자에 갇혀 목만 내놓은 채 약물실험을 당하고 있다. 토끼들은 지독한 통증으로 눈물을 흘릴 정도였지만 목이 실험 장치에 고정된 상태라 몸부림조차 치지 못했다. BUAV는 실험실에서는 토끼들에게 30시간 넘게 사료는 물론 물도 먹이지 않았으며, 이 과정에서 토끼들이 목숨을 잃기도 하고 상자 안에서 생체실험을 받다 미쳐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실험실에서 이렇게 희생당한 토끼와 쥐는 수만 마리. 더욱이 실험에 사용된 의약품은 생명을 살리기 위한 치료제가 아니라 성형시술에 쓰이는 약물 보톡스였다.

한국동물연합(이하 동보연) 이원복 대표에 따르면 이는 충격적인 동물실험 실태 중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동물실험에 대한 인도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실험동물에 관한 법률'도 제정됐지만 이를 감독하는 기관이나 실험을 규제할 제도적 장치가 없어 사실상 무법천지다. 동물을 실험에 사용하는 목적은 크게 생활용품 안전실험, 심리학 실험, 약품실험, 군사실험 등이며, 사용되는 동물의 종류는 쥐, 원숭이, 토끼, 새 등 다양하다.

영국에선 새끼 비글의 털을 깎고 온 몸에 석유를 적신 붕대를 감고는 강아지들 몸에 불을 붙이거나 태어난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은 59마리의 햄스터 새끼들의 왼쪽 눈을, 얼굴의 중간에서부터 도려낸 후 어미들에게 돌려보낸 실험을 진행했다.

또 두 마리 새끼 고양이의 결막과 눈꺼풀을 실로 꿰맨 후, 그들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틀에 묶어서, 뇌 속에 양고추냉이 페록시디아제를 주입했다. 특수 장치를 설치하기 위해 원숭이의 머리에 철심을 박거나 마취도 하지 않고 개의 다리를 쇠망치로 때려 부러뜨리는 실험도 여러 번 보고됐다. 이밖에 실험동물들을 장기간 잠을 재우지 않거나 먹이와 물을 주지 않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얼마 전 화장품 회사에서 신제품 개발 명목으로 토끼의 눈에 마스카라를 3,000번 이상 발라 실명에 이르게 하는 사례도 전파를 탔다. 암 종양의 유발, 뇌손상의 유발, 등 동물을 상대로 무분별한 실험이 계속되고 있다.

동보연 이 대표는 "특별히 잔인한 사례들만 뽑은 것이 아니라 무작위로 선택된 것들"이라며 "이처럼 실험실에서 죽는 동물들은 세계적으로 한해 약 5억 마리, 국내에선 500~600만 마리로 추산 된다"고 밝혔다.

동물실험 맹신의 결과 엄청난 재앙으로

그렇다면 극심한 고통을 수반하는 동물실험은 필요악일까? 동물실험 반대론자들은 효용성이 불투명하거나 인간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실험, 연구기관의 이익에만 기여하거나 지나친 위해를 유발하는 연구 등 불필요하게 동물을 희생시키는 실험이 대부분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의 사치와 허영을 위한 화장품 생산이나 담배나 알코올, 독성세재의 안전성 검증을 위해 억울하게 동물들을 희생시키는 것은 윤리적인 문제로 많은 지탄을 받아왔다.

동물실험 반대론자들은 무엇보다 동물을 이용한 실험이 비과학적이며 인간에게 재앙을 가져올 위험이 높다고 우려한다. 영국 최대의 동물실험회사인 '헌팅턴'은 사람과 동물은 신체 대사기능이 다르기 때문에 동물실험의 결과가 인간에게 적용될 확률이 5~20%에 불과하다고 스스로 인정한 바 있다. <탐욕과 오만의 동물실험>을 공동집필한 저명한 마취의사이자 수의사인 레이 그릭과 진 스윙글 부부는 미국의 입원환자 가운데 15%는 약물거부반응으로 사망하는데, 이들 약물은 동물실험을 통해 개발됐다고 주장한다. 신약에 대한 부작용으로 죽는 사람은 미국에서만 연간 1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동물실험을 거친 약물의 부작용 사례로 독일의 그루넨탈 제약사가 개발한 입덧치료제 탈리도마이드가 유명하다.

1957년 유럽과 미국, 일본 등에서 '부작용 없는 약'으로 불티나게 팔렸다. 수많은 동물실험을 통해 안전성이 입증됐다는 제약회사의 주장 때문이다. 하지만 전세계에 걸쳐 약 1만여 명의 기형아가 태어나자 1961년 이 약의 판매가 전격 금지된다.

1963년까지 실시된 여러 가지 연구는 흡연과 폐암 사이에 강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나타냈다. 그러나 동물을 이용한 흡연실험에서 흡연과 폐암과의 상관관계를 입증하는데 실패했다. 담배회사들은 동물실험 데이터를 가지고 흡연에 의한 폐암위험 가능성의 경고를 수년 동안 늦출 수 있었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폐암으로 죽었다.

동물을 이용한 에이즈 연구에 사용된 수십억 달러의 연구비는 에이즈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에이즈 연구자인 대니 볼로그네시 박사는 인간의 후천성 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과 질병이 동물실험에서는 제대로 재현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만약 동물실험에 쓰인 막대한 연구비를 대중을 상대로 한 성교육이나 일회용 주사기의 사용, 그리고 콘돔의 무료배부에 사용했다면 새로운 에이즈의 발병률은 급격하게 떨어졌을 것이라는 게 그의 의견이었다.

대체실험 세계적 흐름

동물실험에 대한 반대여론이 높아지면서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자구책 마련이 이어지고 있다.

독일에선 군사무기 관련 동물실험과 담배와 세제, 화장품에 관한 동물실험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영국은 화장품과 담배, 알코올 관련 동물실험을 금지하고 있으며, 동물에게 극심한 고통을 수반하는 '반수치사량(LD50)' 테스트와 토끼의 눈을 이용한 '드레이즈' 테스트를 금지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09년부터 동물실험을 한 화장품의 생산과 판매, 유통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그리고 기존에 이미 개발된 10,000개 이상의 화장품 원료에 대해서도 더 이상 동물실험을 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해놓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 캐나다, 일본 등에서는 동물을 이용하지 않는 대체실험방법에 막대한 예산을 투자해 성과를 내고 있다. 유럽연합은 1994년 유럽 대체실험검증센터(ECVAM)를 만들어 동물 대체 실험법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미국은 1997년 같은 기능을 가진 대체실험검증위원회(ICCVAM)를 세웠다. 일본도 2004년 일본대체실험검증센터(JACVAM)을 설립했다.

미국은 부식제 실험을 할 때 토끼 대신 인공피부를 쓰고 있고, 캐나다는 포유류에 비해 고통을 기억하는 시간이 극히 짧은 것으로 알려진 어류나 미생물을 이용하고 있다. 독성물질 실험에는 동물 대신 계란을 이용하는 방법도 과학적으로 인정받고 있고 화장품의 안자극성 테스트에는 도축된 소의 안구를 이용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동물의 반응을 본뜬 컴퓨터 시뮬레이션이나 인간 세포를 시험관에서 키운 뒤 약품을 투입해 변화를 분석하는 방법이 연구자들 사이에서 각광받고 있다. 동물을 이용하는 실험에 비해 시간과 비용이 절약되며 심리적 거부감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동물실험 실태는 어떨까? 2009년 11월 식약청 산하에 '동물대체시험법 검증센터'가 설립됐다. 유럽연합과 미국, 일본에 이어 네 번째다. 하지만 선진국에 비해 대체실험 연구 성과는 초라하기만 하다. 별도의 예산도 배정되지 않았고 전담 연구원도 없기 때문이다. 또 유럽과 달리 화장품회사를 비롯해 대부분의 국내 회사들은 여전히 제품개발에 동물을 이용하고 있다.

그렇다고 동물실험에 대한 열악한 인식과 실태가 개선될 기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구제역 이후 동물생명에 대한 성찰의 분위기가 커져가는 상황에서 육식과 함께 실험동물에 대한 윤리적인 고민도 늘고 있다는 게 동물보호협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게다가 해외시장에서 동물실험 제품에 대한 거부감이 크기 때문에 이를 의식하지 않으면 수출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바이오산업 강대국으로서 대체실험 추세 같은 국제적 흐름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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