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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냐 존재냐? 소유의 정리다!

사회선생 2021. 6. 11. 10:55

사회가 분화되는 것이 발전인가에 대한 논의는 고전적이라 이제 논할 가치도 없는 일이 돼 버린 것 같다. 사회 현상이라는 것이 단순하지 않아서 분화가 발전이다 퇴보다라고 이원론적으로 접근할 수가 없다. 어쩌면 사회현상을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는 혹은 재미없는 이유는 이와 같은 복잡성과 예외성 때문이리라.

 

'신박한 정리'라는 TV 프로그램을 보니 정리 전문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나와서 물건들로 쌓여있는 집을 정리해 준다. 정리 전문가는 물건을 버리도록 한 후에 - 물건을 버리는 데에도 기술이 필요했다! - 남은 물건들을 사용하기 좋도록 재배치해 주는 역할을 했다. 와, 역할과 기능의 분화가 이제 집안 정리의 기술자까지 등장시켰구나 감탄(?)을 했다.

 

소유냐 존재냐의 게임에서 에리히 프롬의 우려와 예견대로 사회는 소유로 이미 기울어져 버렸고, 소유물을 통해 인간의 존재 가치를 찾아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물건을 버리는 것은 자신의 신체의 일부분을 떨어뜨리는 것 만큼이나 힘든 일이 되어 버렸다. 물건이 귀해서 못 버리던 시대와는 분명히 다르다. 옷이나 신발이나 가방을 일회용 물병 버리듯이 쉽게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자아정체성을 보여주었던 , 그리고 자신의 추억이 묻어있다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물건이기 때문일게다. 인간의 정신적 결핍감을 물건들이 꽉 채워주고 있다. 그게 바람직한 것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회화시킨다. 그래서 현대인은 순간순간 소유물과 자신을 통합시키는 물아일체의 경험(?)을 하며 살아간다.

 

하긴 그 사람이 입는 옷이 그 사람을 보여준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고, 그 사람이 먹는 음식이 그 사람을 만든다는 것에 반대하기 어렵지만 ... 이제 정리 전문가까지 고용하며 정리를 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는건 '발전'이 아니라 '퇴보'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신박한 정리'에서 정리를 끝낸 사람들이 흘리는 눈물은 물건으로 포장된 자아에서 벗어나 자신이 중심이 되는 자아를 찾은 것에 대한 기쁨은 아니었을까? 인간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모두 알지만, 아는 대로 살지 못하는 우리의 어리석움이란. 나? 별반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