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결혼이 뭐길래

사회선생 2021. 2. 28. 18:03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이른바 명문대생들끼리 소통하고 만나는 온라인 매칭 서비스가 출시되었다고 한다. 서울대 졸업생들끼리 만날 수 있는 앱도 개발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있자니 여러 가지 생각이 난다. 

 

나도 결혼하기 전에 배우자를 고르는 데 가장 중시했던 조건이 '학벌'이었다. 학벌을 우선 순위에 둔 이유는 단순했다. 학교 다닐 때 공부 못했던 사람이 싫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의 생각엔 좋은 대학에 가지 못했다는 것은 공부를 못했다는 것이고, 공부를 못했다는 것은 둘 중 하나였다. 머리가 나쁘거나 불성실하거나. (물론 나중에 교사 생활을 하면서 공부를 못 하는 데에는 매우 다양한 이유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 

 

하지만 그 때에도 이미 좋은 배우자의 조건을 터특한 친구가 있었다. 겨우 대학교 1학년였는데.... 친구가 내게 소개팅을 하라고 했다. 명문대생이 아니어서 난 싫다고 했다. 그 때 친구가 했던 말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너 학벌 별 거 아니야. 어른들 젊잖고 돈 많은 집안인게 훨씬 낫지. 걔도 얼마나 착한데. 오히려 있는 집에서 잘 자란 아이들이 구김도 없고 매너도 좋고, 여자에게도 훨씬 잘 해. 개천에서 용된 서울대생 얼마나 피곤한데? 너 잘 생각해라. 헛똑똑이짓 하지 말고." 그 친구는 당시 의대에 다니고 있었는데, 잘난척 하는 의대생들을 많이 본다며, 그런 애들보다 잘 사는 집의 착한 남자 만나는게 낫다고 '학벌'따위에 연연하는 나를 한심하게 생각했다. (어떻게 20살의 나이에 그런걸 알 수 있었을까? 그 친구는 공부 머리만 좋은게 아니었다! ) 

 

현대 사회에서 각자의 취향에 맞는 이성을 만나 사귀고, 결혼하고 싶다는 욕구는 새삼스러울게 없다. 취향에는 '경제력, 직업, 학벌, 학력, 외모, 성격 등' 다양하다. 서로의 취향이 맞아 떨어질 때, 만남이 이루어지고, 사랑으로 발전해서 결혼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따지고 보면 결혼은 조건 만남으로 시작된다. 어느 누구도 도시의 대졸 직장 여성에게 고졸 농부를 만나보라고 하지는 않는다. 대졸 직장 여성이 고졸 농부를 굳이 만나서 결혼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남녀 불문 결혼은 현재의 자신의 생활 수준이나 방식을 유지 혹은 발전시켜 줄 사람을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여성이 조건을 더 많이 따졌는데 - 남성에 의지해서 사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 요즘은 워낙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 되다보니 남성도 여성의 조건을 많이 따진다. 그들도 의지하고 싶어한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서울대생끼리 만나는 것도 새로운 일도 아니다. 단지 그들은 편리한 문명의 이기를 이용해서 그들이 원하는 배우자를 찾고 싶어했던 것 뿐이다. 민주주의의 정서에 반하는 폐쇄적인 울타리가 불편하고, 마치 신분제 사회에서의 결혼의 목적처럼 계층 유지 수단으로 다시 회귀되는 것 같은 느낌이 불편하며, 게다가 서울대라고 하면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인데, 그들마저 자신들만의 리그를 대놓고 만들려고 하니 씁쓸할 뿐이다. 이렇게 점점 더 폐쇄적으로 변화되는건 사회의 양극화와 경제난이 심하기 때문인데, 이건 원인이라기보다 결과이므로 관대하게 봐 줘도 될 듯 하다. 

 

그리고 진짜 조금 더 살아 본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그렇게 명문대 출신들끼리 살아도 뭐 살아보면 거기에서 거기다. 크게 다르지 않다. 더 행복하지 않다는 의미이다. 내가 갖지 못했다고 해서 대단한걸 가진 것처럼 생각할 필요가 없다. 결혼의 조건은 살아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간의 간극이 너무 큰 것 같다. 항상 현재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을 만났어야 한다고 후회하지만, 그 후회는 어쩌면 갖지 못한 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만족을 모르는 기질에서 나오는 것일 수도... 하다보니 남 이야기가 아니네. 아무튼 그들만의 리그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열 받을 일은 아니다. 원래 결혼이라는 제도가 그런 것일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