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
기량이 뛰어난 프로 배구 선수들이 중고등학교 시절의 학폭 가해자로 밝혀지면서 퇴출 위기에 놓였다. 피해자의 증언을 보면, 사춘기 시절에 있을 법한 거친 말과 행동 수준이었다고 이해하기 힘든 폭력이었음이 명백하다. 게다가 일회성도 아니고 다수를 상대로 지속적으로 행해졌다. '지속적'인 그들의 행위를 왜 당시 학교와 감독이 잡으려고 하지 않았을까? 몰랐을 리는 없다.
만일 학교가 그들의 중학교 시절, 운동부의 폭력 문제를 파악하고, 엄격히 대처했다면 피해자의 상처는 회복되었을거고, 가해자들은 10년이 지난 지금 자신들의 재능을 맘껏 펼치는 괜찮은 운동 선수가 돼 있었을 것이다. 학교가, 감독이, 학부모와 학생들조차 왜 당시에는 침묵했을까. 학교 폭력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운동부라는 권력의 위계가 엄격한 조직의 특성도 있겠지만 여기에서는 학교라는 공동체 문제를 중심으로 이야기해 보고 싶다.
첫째, 학교라는 공동체가 '교육'을 가운데에 두지 않고, 기업처럼 '실적'을 중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 운동부라고 해도 '학생으로서의 기본 교육'이 우선이지 금메달이 우선일 수 없다. 고등학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명문대 입학률이라는 실적이 우선일 수 없다. 그런데 우리네 학교들은 실적에 목숨건다. 그래서 그 실적에 조금이라도 나쁜 영향을 가져올 만한 일이라면 덮으려고 한다. 과장일지 모르겠지만, 학교 폭력 가해자가 국가대표급 기량을 가진 학생이거나 전교1등이라도 하는 학생이라면 학교 폭력이 '관대하게 처리해야 할' 사안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둘째, 학교라는 공동체는 사법 기관이 아니다. 교사들은 법 전문가도 아니고, 학폭을 해결할 만한 권한이나 권위도 없다. '사소한' 학폭 조차 '사소한'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피해자와 피해자의 학부모에게 시달려야 한다. 가해자에게 '훈계'라도 하면 가해자의 변호사가 나타나 '가해자'로 규정했다며 교사로서의 자질을 문제 삼으며 위법 운운한다. 학교와 교사들은 매우 피곤해진다. 학폭이 발생하면 학교에서 교육은 사라지고, 형식적인 절차만 남는다. 그 형식적인 절차에서조차 최대한 학교 폭력을 축소하려고 한다. 피해자도 점점 지쳐간다. 좋은게 좋은게 아닌데, 좋은게 좋은것처럼 돼 버린다. 학폭위를 열어도 해결됐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사춘기의 소년 소녀들이고, 한창 성장하는 학생들이라 사실 지금의 모습은 매우 유동적이다. 보여지는 모습이 전부가 아닐 수 있고, 나이 들면, 철 들면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학교 폭력이라는 현재의 잘못을 대충 넘어가서는 안 된다. 가해자라고 낙인을 찍는 것이 된다고, 미래에 해악이 된다고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피해자들을 보호하는 것이어야 한다. 정말이지 학교 폭력을 '제대로'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필요하다.
지나치게 목적 중심적이기 때문이다. 배구 선수 역시 가해자가 별볼일 없는 선수였으면 아마 처음부터 응징(?)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기량이 뛰어난 선수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선수들을 배제할 경우 실적을 세우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전교1등 하는 학생이 학폭 가해자가 될 경우, 학교에서는 대학입시 실적을 고려해 매우 '관대한' 처분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