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노견
인간의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노인 환자들이 많아졌다. 병원에 가 봐도 정형외과, 신경외과, 신경정신과 등에는 휠체어나 지팡이에 의존해서 온 노인 환자들이 많다. 수 십 년 전만 해도 원인 불명의 불치병이었던 질병이나 노화로 인한 증상들이 지금은 다양한 검사를 통해 원인을 찾아내고, '치료 가능한 병' 혹은 '질병의 진행을 일정 수준 지연시킬 수 있는 병'이 되어 병인지 아닌지 모를 상태로 노인들의 삶과 함께 하고 있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며 나타나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다.
그런데 반려견이나 반려묘도 비슷하다. 노견 환자들이 많아졌다. 야생에서 살면 제 명을 다 하는 경우가 드물지만 인간의 보살핌을 받고 사는 동물의 경우에 - 동물원은 별로 그렇지 않지만 - 수명이 늘어났고, 야생에서는 걸리면 죽을 수밖에 없는 병들이 치료로 연명 가능해졌다.
토리와 해리가 진드기 감염으로 생사의 고비를 왔다갔다 할 때에 이리 저리 정보를 찾다가 '아픈 반려 강아지와 고양이를 위한 힐링 카페'라는 인터넷 카페에 가입하였는데 그곳에서 얼마나 많은 노견들이 사람과 얼마나 비슷한 노환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됐다. 백내장, 치매, 당뇨, 지방간, 암, 각종 면역성 질환 등. 우리 강아지가 혹은 우리 고양이가라는 말 대신에 우리 어머니가 우리 아버지가라는 말이 들어가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여전히 많은 동물병원은 이런 질병들을 치료할 만한 역량이 안 되어서 오히려 증상을 악화시키거나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경우들도 많아서 병원을 원망하는 글들 역시 하루가 멀다하고 올라온다. 나 역시 동네 동물병원의 오진으로 토리를 천국으로 보낼 뻔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남일 같지 않다.
물론 동물에 대한 인식은 우리 사회 안에서도 온도 차가 크다. "개도 암에 걸려? 개도 치매에 걸려?" 이런 질문을 하는 무지한 사람부터 "그럼 죽어야지. 그걸 치료한다고? 돈이 썩어난다." 고 남의 재정 사정까지 걱정(?)해 주는 사람에 "그럴 돈 있으면 불우이웃을 도와."라는 자칭 휴머니스트(?)까지... (단언컨대 그렇게 말하는 사람치고 이웃을 위한 자선이나 기부를 하는 사람은 없다.)
노견, 노묘들의 질병만 보더라도 동물은 인간과 매우 유사한 점이 많다. 의사가 아니어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애써 인간들은 그들을 나와 완전히 다른 존재인 것처럼 두고 싶어한다. 그들을 물체화, 객체화, 도구화하지 않는 이상 그 동안 인간들이 쌓아왔던 업적들은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일이 될 수 있으며, 동시에 현재 내가 누리는 쾌락과 편리가 사라질지도 모르니까...
인간은 삶의 목적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존재인 것처럼 말하지만 솔직히 말해보자. 삶의 목적?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런 거창한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태어났으니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사는 것이다.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야 하니 일하는거고,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해야 하니 뭔가 또 다른 세상을 꿈꾸는거다. 어쩌면 후자는 가장 인간다운 인간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