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아, 정말 뿜겠다.

사회선생 2013. 10. 22. 09:22

 

 얼마 전 학급에서 무단 결과 사건이 있었다. 공부에는 영 취미가 없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K양이 C양과 지루한 수업 시간을 탈출해 그들만의 시간을 보낸 것이다. 심지어 지난 몇 주 동안 상습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고 한다. 담임인 나도, 교과 담당 교사도 미처 몰랐다. 담임 시간에는 늘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만만한(?) 교과 시간에만 무단 이탈을 한 탓이다. 교과 담당 교사들은 간혹 교실의 몇 자리가 비어도 직업 과정 학생들이나 운동부 학생 때문이겠거니 한다. 고3 교실에서 무단 결과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K양의 무단 결석 일수와 벌점은 학년 내 최고 수준이고, 그나마 학교에 오는 날도 3, 4교시 즈음에 등교해서 깊은 숙면을 취한 후 점심 식사를 하고 친구들과 놀다 귀가한다. 그래도 꼭 예쁘게 화장하고 피어싱에 화려한 매니큐어까지 매일 바꿔가며 칠하고 오는 걸 보면 얘가 그래도 살아있구나 싶어서 오히려 안심이 된다. 삶의 의욕이 없는 애들은 그런 짓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누구나 예상하겠지만 공부는 아주 못한다.

 C양 역시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이다. 기본적인 학습 능력이나 태도가 갖춰지지 않았고, 칠판 닦기나 교실 청소같은 일을 맡았을 때에도 제대로 하는 법이 없다. 잠은 K양처럼 숙면 수준은 아니지만 하루 종일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귀가한다. 여리고, 착하고, 노는 거 좋아하고, 귀가 얇고, 늘 달뜬 상태인 학생이다. 어쨌든 둘이 어울리는 것은 누가 봐도 유유상종인데 아이가 무단으로 수업에 빠졌다는 이야기를 전화로 전하니 C양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C는 너무 착해서 K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을 알고 도와주고 있는거에요. C는 중학교 때부터 공부 잘 하는 애들은 이기적이라면서 잘 어울리지 않고, K처럼 공부 못 하는 애들이 인간적이라며 도와주고 싶어하더라구요. 친하게 지내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니까 같이 수업 좀 빠진다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걔가 그렇게 희생 정신이 강해요. C가 K를 설득해서 다시 학교 생활 잘 하게 할거에요. 그리고 C는 성적 안 나오면 미국으로 유학 보내면 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이와도 그렇게 이야기 끝냈어요.”

“.........”  아, 정말 뿜겠다.

 

P.S. 며칠 후 C는 옆 건물의 중학생이 자기네 화장실에 와서 흡연했다고 신고를 당했고, 생활 지도부에 호출당해 갔다가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되었다. 그리고 오늘은 둘이 사이좋게 나란히 무단으로 등교하지 않았다. 모쪼록 한 때의 방황으로 끝나기만을-! 얘들에게 잘 하는 것을 찾아서 시켜주는 것이 교육이 되어야 하는데... 인문계 고등학교는 공부에 적성이 없는 애들에게 가혹하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