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특은 내가 쓰는건데?
" 선생님, 선생님은 세특 써 오란 말 왜 안 하세요?"
" 세특? 그건 내가 쓰는건데, 왜 네게 써 오라고 해야 되지? 이미 관찰한 대로 다 썼어."
요즘 생기부 계절이다. 과목마다 세부 능력 특기 사항을 쓰느라 학생들이 난리이다. 왜 과목별 세특을 교사가 아닌 학생들이 써 내야 하는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 과목별 세특은 학생에 대한 정성 평가이다. 평가를 스스로 하는걸 생기부에 써 준다는 건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수업 시간에 한 활동인데, 교사가 모른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난 생기부를 위해 학기별로 모두 참여해야 하는 수행 평가를 한다. 그리고 수행 평가 내용을 생기부에 써 준다. 수행 평가를 모두 했기 때문에 안 써 준 애는 없다. 단, 수행 평가를 잘 한 애는 많이 썼을거고, 못 한 애는 적게 썼을거다. 열심히 한 학생은 내가 쓸 꺼리가 풍부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나도 곤혹스러운게 있다. 담임이 써 줘야 하는 자율 항목 때문이다. 자율, 봉사, 진로는 나도 뭘 써 줘야 할 지 모르겠다. 담임의 관찰 영역 밖의 활동들이기 때문이다. 난 누가 무슨 개별 활동을 했는지 일일이 관찰하지 못했다. 관찰할 수도 없다. 내가 관찰할 수 있는 시간에 관찰한 내용이라면 써 주겠다. 예를 들어 반장인데 늘 솔선수범해서 학급 일을 했다든지, 주번인데 늘 칠판 정리를 잘 했다든지, 대청소를 할 때에 끝까지 유리를 닦았다든지, 분리 수거용 쓰레기를 자원해서 버렸다든지...
그 외에 시간에 학생이 한 활동은 내가 알 도리가 없다. 그런데 써 주란다. 명사초청특강에서 무엇을 했는지를 써 주고, R&E 활동에서 무슨 연구를 어떻게 했는지를 써 주고, 봉사 활동을 어떻게 해 줬는지를 써 줘야 한다. 그런데 난 솔직히 모른다. 내가 아는건 '했다'는 사실 뿐이다. 면담을 통해서 학생의 이야기를 상세히 써 주라는데 그것도 우습다. 생기부가 학생 면담 내용을 써 주는 건 아니지 않은가?
중고등학교의 생기부는 온전히 학교 수업이 중심이 된 기록이어야 하고, 그 외의 기록은 특이 사항 정도면 족하다. 담임이라고 해도 학생들을 관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자율, 진로, 봉사 등의 모든 영역을 총체적으로 다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학생들에게 자신이 한 활동을 써 오라고 하면서 드는 담임 교사로서의 자괴감은 일이 싫어서가 아니라 진실성 없는 일이 불편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