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저히 떨어지기 힘든 내신성적을 가진 학생인데 최종에서 떨어졌다. 아무리 학생부 종합전형이지만 납득이 되지 않았다. 면접을 잘 하지 못해도 성적이 좋아서 붙을 수 있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사실 학생은 그 대학에 지원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자신의 내신 성적이 그 대학에 가기에는 아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내신 성적의 수준에 비례하는 수능 성적은 안 됐기 때문에 안정지원을 해야 한다고 강권해서 그 대학에 지원을 한 것이다. (내신 성적과 수능 성적과의 괴리는 학교 현장에서 해결해야 할 심각한 문제인 것은 분명하다.)
아무리 못 봐도 그렇지 떨어질수 없는 점수라 아이를 불러서 면접할 때의 상황을 물어봤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자신이 생기부의 독서 활동에 써 넣은 과학책에 대해서 질문했는데, 사실은 자신이 읽은 게 아니기 때문에 답변을 제대로 못 했단다. 떨어진 것이 이해가 되었다. 그 학생의 생기부 내용을 모두 믿지 않았던거다. 내가 교수였다고 해도 떨어뜨렸을거다.
읽지도 않은 독서 활동을 생기부에 써 주고, 생기부 부풀리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 대는 우리네 고등학교 현실의 단면이다. 교사 입장에서 그 책을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다. 자신이 읽었다며 형식적으로 서류(우리 학교에는 학생이 제출해야 하는 양식이 있다.)를 내면 교사는 기록해 주어야 한다. 교사가 검증할 수도 없고, 그럴 권한도 없다. 이런 기록을 허용하는 것이 문제이다. 그런데 운이 좋게도 마침 자신이 읽은 책만 딱 집어서 질문하는 바람에 붙은 학생은 없겠는가?
그런 학생도 있다. 정말 성실한, 그래서 생기부의 내용이 대부분 사실인 한 학생이 있다. 그런데 생기부에 쓴 독서 내용은 사실 대부분 뻥이라고 나에게 밝혔다. 그런데 면접 가기 전에 TV를 보던 아버지가 TV에서 야큐정전 이야기가 나오자 자신을 불러 너 아큐정전 읽었다고 생기부에 쓰지 않았냐며 면접 보러 가기 전에 내용이라도 제대로 보고 가라고 했단다. 그래서 아큐정전을 검색해서 보고 갔는데, 면접날 딱 아큐정전에 대해 물어보더란다. 그래서 유창하게 답변했단다. 그래서 그 학생은 합격했다.
그 두 명의 학생만 보더라도 운에 의해 입시가 결정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나는 그렇다고 학종을 없애야 한다는 입장은 아니다. 학종이 없어지면 학교가 학교로서의 가치를 잃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부풀리기이다. 교사가 확인할 수 없는 내용을 써 주는 것은 금지해야 한다. 많이 써 주라고 학교에서 강요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고, 사실이 아닌 것이 밝혀질 경우에는 학교에 엄격하게 제재를 가하고 입시에서 불이익을 주어야 한다. 생기부 인플레이션은 학생들에게도 교육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입시에서도 공정하지 않으며, 교사들에게 자괴감을 갖게 하는 현상이다. 학종이 제대로 운영되려면 이를 막는 작업이 필요하다. 많이 써 주는게 아니라 정확하게 사실을 기록해 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교무수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장님, 출결 지도 한 번만 해 보시면... (0) | 2018.11.20 |
---|---|
대학수학능력시험 국어 (0) | 2018.11.16 |
체육복 등교를 허해 달라는 대자보가 붙다 (0) | 2018.10.23 |
내 맘대로 대학 입시 제도 (0) | 2018.10.22 |
네가 나보다 더 많이 알아? (0) | 2018.10.18 |